박진영의 사진, 사진의 궤적 그리고 변증법적 이미지
서동진 (계원예술대학교 조교수)
“경과하는 시간이 아니라 그 속에서 시간이 멈춰서 정지해버린 현재라는 개념을 역사적 유물론자는 포기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현재 개념이야말로 그가 자기의 인격을 걸고 역사를 기술하는 현재를 정의하기 때문이다.”①
“은유적으로 받아들였을 때, 운항이라는 개념은 사진적 의미-그리고 바로 그 사진 담론-가 루카치가 부르주아적 사유의 이율배반이라고 칭한 것 사이에서의 끊임없는 동요를 통해 특징지어지는 방식을 가리킨다. 이는 언제나 객관주의와 주관주의 사이에서의 운동이다. 그런 처지에 따를 때, 그것(사진적 의미-인용자)은 합리주의와 비합리주의, 실증주의와 형이상학, 과학주의와 미학주의 사이에의 운동이기도 할 것이다.”②
W. G. 제발트를 떠올리며.....
독일 출신이었으며 오랜 시간 영국에 살았으며 독일어로 소설을 썼던 소설가 제발트(W. Sebald). 그의 소설을 읽는 것은, 그것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읽는 것은 미련스런 일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부터인가 끈끈이에 붙잡힌 파리처럼 그의 소설에 갇혀있다. 가뜩이나 수선한 꿈자리는 그의 소설 탓에 더욱 뒤숭숭해질 것이다. 그러나 나는 머리맡에 제발트의 소설을 둔다. 그리고 그의 소설 몇 페이지를 읽다 잠이 든다. 새벽 혹은 늦은 아침, 잠에서 벗어나 눈을 뜨자마자 소스라치게 꾸었던 꿈을 가두고 잡아보려 하지만 부옇게 감돌던 꿈은 연기처럼 자취를 감추고 만다. 아마 그 꿈은 지난 밤 읽었던 제발트의 소설에서 말미암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의 소설을 읽은 이들은 알겠듯이 그가 들려준 이야기의 어느 빈틈으로부터 다른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가지를 뻗는다고 믿는 것은, 그럴 듯한 가설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그리고 그것은 하염없이 우울하게 심정을 파고든다. 그러나 그것을 내 것으로 삼아 나의 이야기를 짓는 재료로 삼기는 어렵다. 그의 소설을 읽을 때 독자는 완강하게 오직 제발트란 소설가에게 소속된 이야기처럼 들리는 것을 마주하고 있다는 생각에 직면한다. 함께 나누고 반응하기 어려운 이야기, 반드시 스스로에 속한 이야기임을 강변하는 글은, 독자의 동일시를 완강하게 거부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흥미와 관심이 시드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에 개의치 않고 계속 귀 기울인다.
소설은 언제 체험과 사건을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로 구성한다. 그것이 비극이든 희극이든 아니면 서사시이든 아니면 어떤 장르의 수사를 통한 것이든 그것은 교훈을 전하거나 반성을 촉구하거나 하는 식으로 독자를 자신이 읽은 이야기에 참여시킨다. 그렇지만 제발트의 소설에서 우리는 세상에 둘도 없이 오직 혼자인 사람을 마주하는 기분에 빠져든다. 그것은 아마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화자들이 모두 이주민이거나 여행자인 탓에 그런 것이기도 하다. 제 자리를 찾지 못한 채 세계를 유랑하는 이들은 어쩔 수 없이 개인 대 세계라는 대립을 상연한다. 그렇지만 성장 소설이나 모험 소설에서의 떠돌이 혹은 방랑하는 개인이 세계를 대하는 것과 제발트 소설의 화자들이 그런 관계를 맺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그의 소설 속의 인물은 자신의 자유의 실현을 가로막는 장벽으로서의 세계를 상대하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인물들에게 세계는 자신의 성장과 발전을 제한하는 구체적인 외적인 힘이 아니라,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운 거의 폐허와도 같은 잔해로 가득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처음부터 극복하거나 넘어서야할 무엇이 아니다. 성장 소설이나 모험 소설에서 흔히 세계란 그것을 뚫고 나가거나 넘어섬으로써 미래로 향해 나가는 시간적 전환(그리고 이를 서사화하는 주인공의 변이 즉 성장, 성숙, 완성, 발견 등)의 알레고리이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그런 세계의 면목을 제발트 소설에서 찾아보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의 소설에서 세계란 미래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침범하는 과거로 인해 현재라는 시간적 지평이 항시 불안하게 뒤흔들리고 마는, 위태롭거나 윤곽 없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소설을 읽을 때, 이런 인상을 결정적으로 강화하는 것은 계속하여 등장하는 사진들이다. 그것은 그가 여행을 하면서 찍은 비망록(aide-mémoire), 즉 체험된 세계의 현존을 속기(速記)하기 위해 거머쥔 사진일수도 있고(<토성의 고리>, <현기증/감정들>, <아우슈터리츠>), 가족 앨범이나 엽서, 누군가의 사진첩에서 획득한 사진들(<이민자들>, <현기증/감정들>)일 수도 있다. 그의 소설을 읽을 때 거의 몇 페이지를 건널 때마다 마주쳐야 하는 사진들은, 흔히 사진 이론과 비평에서 말하는 사진과 텍스트의 관계로는 절대 설명될 수 없는 것들이라 할 수 있다. 벤야민이 포토-몽타주(photo-montage)에 열광하며 사진이 만들어내는 판타스마고리아(phantasmagoria)를 중지시키는 힘으로서 텍스트를 발견하듯이, 바르트가 사진의 신화적 특성을 고발하며 사진설명이란 텍스트가 사진의 이데올로기를 부양한다고 비난하듯이 말이다. 그들이 사진의 미적, 이데올로기적인 효력이란 측면에서 사진/텍스트의 관계를 말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제발트의 사진과 텍스트의 관계를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의 소설 속에서 사진은 무엇보다 사진이라고 말하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 때 사진이 사진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진은 그것이 제시하는 정보와는 상관없이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사진이 촉발한 충격 혹은 자극에 반응하여 하염없이 무언가 이야기를 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사진을 보는 이를 서사화를 하도록 몰고가는 사진의 힘은 지금 마주하는 한 장의 사진과 그것의 재현, 혹은 재현적 효과와는 크게 관련이 없다. 그것은 심지어 차라리 이를 웃도는 사진 자체의 힘을 발견한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제발트가 자신의 소설에서 사진을 사용하는 방식의 아이러니는 바로 이 때문에 비롯될 것이다. 그의 사진은 크게 보아 아카이브로부터 획득한 사진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진은 특정한 사진적 사실의 세계에 묶여있다. 그것이 개인의 앨범에 있을 때 그것은 사진에 재현된 인물의 전기적 사실을 증언하는 것이 된다. 그것이 여행자가 방문한 장소와 인물의 기록일 때 그것은 그 장소와 인물의 정체성에 대한 기록으로서 간주된다. 그런 것이 아카이브에 속한 사진의 속성이다. 그렇지만 제발트는 이러한 아카이브적 이미지에 완강하게 들러붙어 있는 ‘재현으로서의 사진 이미지’라는 특성을 무시하거나 외면한다. 아카이브적인 사진은 오직 사진을 찍고 관람하는 자의 눈길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변모한다. 아카이브적인 사진 이미지가 이 사진 속에는 무엇이 재현되어 있고 그것이 이 사진의 전체라고 침착하고 무뚝뚝이 말할 때, 제발트는 그 같은 사진이 자처하는 스스로의 임무로부터 그 사진을 떼어낸다. 아카이브적 이미지는 세계의 기록이 아니라 반대의 방향으로 내닫는다. 그 사진 이미지는 세계가 없기에, 즉 세계 속에서 자신의 좌표를 찾을 수 없기에 초조하고 우울하게 시선을 두는 주체를 위해 존재한다. 따라서 사진은 자신의 편에서가 아니라 그것을 보는 이들에게 자신의 삶이 나타나는, 즉 현상학적인 깨어남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변신한다. 아니 그런 듯이 보인다.
스투디움의 노선/푼크툼의 노선 – 사진의 존재론적 전환?
제발트의 소설을 읽으며 그리고 무엇보다 페이지마다 빼곡히 산재한 사진을 마주할 때 직면하는 멜랑콜리를 떠올리며, 박진영의 사진과 마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근년 사진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둘러싼 변화를 그의 사진을 통해 가늠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풍경 사진이거나 인물 사진이든 아니면 심지어 패션 사진이든 모든 사진들이 갑자기 자신이 재현하는 대상, 사진 내부에 기재된 정보라 할 만한 것을 볼 것이 아니라 바로 사진을 보고 있음을 환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사진은 상당히 아름답고 눈길을 끌어맨다. 바르트의 그 악명 높은 이분법을 빌자면 우리 시대의 사진은 스투디움(studium)에서 푼크툼(punctum)으로 일제히 전향한 듯 보인다.③ 그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특히 그것이 예술 사진의 문제라면 말이다. 발터 벤야민, 빅터 버긴이나 앨런 세큘러, 존 탁 등의 비평가 혹은 사진가들의 글을 읽고, 도서관에 어쩌다 들어온 사진집을 들춰보며 희귀하게 열리는 사진 전시를 기웃거리며 믿었던 것, 사진 이미지가 현실의 투명한 재현이 아니라 그것은 이데올로기이며 담론이고 언어적 코드에 다름 아니라는 확신, 다시 한때 그 스스로 열정적인 사진의 기호학적 비평가였던 바르트의 말을 빌자면, 스투디움으로서의 사진과 그것의 비판에 우리는 열광하였다. 다시 말해 사진을 보고 즐긴다는 것은 언제나 ‘비판’의 즐거움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사진작가는 비판적 예술가였던 연유로 사랑과 지지를 받았다.
내가 존경하는 그리고 같은 학교에서 일하는 터라 자주 말을 섞는 사진이론가 한 분의 발언이 떠오른다. 몇 해 전인가 어떤 이야기를 나누다 그가 “이 망할 푼크툼을 조져야 한다!”고 분을 삭이지 못한 채 역정을 냈다. 그 후에도 가끔 그가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푼크툼에 저주(?!)를 퍼붓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는 증거로서의 사진이라는 주장을 통해 근대적인 규율권력의 주도적인 시각 장치로서의 사진을 분석해 유명했던 존 탁과 함께 공부를 한 적이 있다. 그러니까 그는 스투디움 세대이다. 그렇지만 정치적 이미지 비판의 세대, 스투디움 세대는 이제 패퇴한 듯 보인다. 이 세대는 사진적 재현과 사진 이미지의 생산, 분배, 소비가 어떻게 자본/노동, 제국주의/식민, 남성/여성, 이성애/동성애 등의 권력관계를 구성하고 재생산하는지 폭로하고 교육하였다. 그리고 어떻게 사진이 해방적이고 전투적인 정치적 매체가 될 수 있는지 탐색하려 하였다. 그러나 세상은 그 사이에 급변하였다. 비판과 해방 따위의 말은 주가가 떨어졌다. 이제 사진의 담론적 정치 같은 따분하고 신나지도 않는 이야기보다는 사진의 존재론 같은, 알쏭달쏭하기는 하지만 조금 더 그럴 듯해 보이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눈치이다. 아마 몇몇은 푼크툼으로의 전환, 그것을 지지하는 숱한 이론적인 시도④가 마뜩찮았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역시 푼크툼이라는 암호와도 같은 낱말을 깊이 의심한다.
사진은 스투디움의 사진과 푼크툼의 사진으로 분할할 수 있는가. 푼크툼은 사진의 분석적 개념이자 이론적, 정치적 지침일 수 있는가. 아니면 그것은 어떤 사진에 과도한 애착을 보이는 사적인 감상자의 태도를 가리킬 뿐 사회적 장에 속한 사진을 말려면 제외시켜도 좋은 것인가. 사진이라는 기술적, 화학적 매체로서의 복잡한 특성 혹은 매체의 물질성을 간과하거나 무시한 채 오직 그것의 의미의 차원-이를테면 기호학적인 용어를 빌어 말하자면 의미작용의 실천(signyfing practices)에만 주의하는 일면적인 접근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한 인식론적, 미학적인 돌파구, 그것이 푼크툼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빈정거림처럼 ‘매체의 특수성’이라는 마법의 주문을 되뇌면서 사진 역시 모더니즘적인 비평의 세례를 받을 수 있게 되었고 당당히 예술로서의 작위를 차지하기 위해 내세운 새로운 허울인가. 나는 각축하는 주장들을 기웃거린다. 그리고 의문은 잦아들지 않고 부풀어 오른다. 푼크툼에 근거하여 사진의 새로운 존재론을 역설하는 이들의 그럴듯한 주장과 이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이들의 환멸감에 찬 목소리의 웅얼거림 사이에서 당혹감은 깊어간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그것도 사진이론과 비평의 전문가도 아닌 내가 이 쟁점에 관하여 어떤 결산을 시도하겠다고 덤비는 일은 터무니없는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나 역시 사진 이미지를 매순간 마주하고 그것이 초래하는 효과에 의문을 품고는 하는 사진의 관람자이자 소비자이다. 또 갑자기 글을 쓸 책무가 주어진 한 더미의 사진을 앞에 두고, 언제나 머릿속을 감돌던 그 의문을 모른 척하기도 어려운 노릇이다. 푼크툼이라는 모호한 낱말에서 사진의 새로운 존재론을 기꺼이 구성할 수 있다고 믿는 주장이 ‘타블로 사진(tableaux photography)’의 유행과 사진의 미술관으로의 입성과 미술 시장에서 사진 거래의 증대와 호가의 상승 등과 어떤 상관이 있을 것이라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마이클 프리드가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몰입(absorption)’과 연극성이란 개념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이를 사진에 도입할 때 그리고 이를 통해 동시대 사진의 경향을 모더니즘적인 이미지의 자율성을 완수한 사례들로 간주할 때, 그것이 결국 사진을 미술관의 박제로 만들려는 작위에 불과한 것이라고 비난하고 싶지도 않다.⑤ 터무니없는 도식이기는 하지만 스투디움에서 푼크툼으로의 이행이라는 동시대 사진의 궤적을 상연하는 듯이 보이는, 그렇지만 그것이 무엇보다 절박하고 또 정당하게 보이는 한 사진작가에게 말을 건네고 싶다. 그의 사진들의 궤적은 사진적 실천이라는 것이 직면한 난관을 스스로 감당하고 또 해결하려는 의미심장한 시도이기 때문이다.
사회학적 사진/장면의 사진
2004년의 <서울-간격의 사회>라는, 박진영을 널리 알린 전시는 아직도 많은 이들이 잊지 않고 언급하는 또 지금 보아도 여전히 아름답고 강력한 사진들을 담고 있다. 그 전시에 나온 사진들을 담은 전시와 같은 제목의 사진집 <서울-간격의 사회>에서 내가 생각하기에 흥미로운 점은 ‘사회’라는 개념이 집요하게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는 전시의 제목에 간격의 사회(society of gap)란 말을 가져다 놓으며 사회란 개념을 끼워 넣는다. 그리고 크게 두 개의 파트로 나뉜 사진들 가운데 첫 번째 파트에 속한 사진을 ‘사회적 풍경(social landscape)’이라고 부른다. 다시 사회란 개념이 등장한다. 그리고 사진집 말미에 수록된 “작업노트”를 이렇게 시작한다. “그동안 나에게 있어 사진은 치기어린 눈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막연한 습관이자 사회를 바라보기 이전에 동시대를 살고 있는 내가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거의 무조건적인 대화법이었다.” 하나의 문장 안에서 우리는 세 번이나 사회란 개념이 등장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 전시 이후 갈수록 그 개념을 사용하는 경우가 잦아들지만 분단 풍경을 제시하는 사진들로 구성된 세 번째 개인전 <The Game>까지 그의 사진을 둘러싸는 가장 중요한 개념이 사회라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서울-간격의 사회>에 등장하는 아르바이트 연작 사진은 사회학적인 실천으로서의 사진이라는 관점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할 수 있다.⑥ 그 사진들은 얼핏 보아서는 인물 사진이다. 그 사진들은 각기 “반나절에 4만5천원 받는 강창훈(22)/강변북로”, “한 달 평균 120만원 버는 K모씨/중랑천”, “일당 7만원의 윤기웅(24)과 4만원의 최철호(21)/홍대 앞” 같은 제목이 달려있다. 그렇지만 사진에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사진 어디에도 출현하지 않는 ‘사회’라는 이미지이다. 사진 이미지가 외시하는 정보 안에는 직접 존재하지 않지만 사진을 볼 때 우리는 사진 안에는 부재하는 대상인 (한국) 사회를 상상하게 된다. 사진을 볼 때 우리는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인구학적인 정보 즉 나이, 이름, 그가 일하는 장소 등의 정보를 제공받는다. 그런 사진 제목을 알고 난 연후에 사진을 다시 보게 되었을 때 우리가 보는 것은 바로 사회학적인 표본으로서 제시된 인물들이다. 그 인물들은 고유한 개성을 가진 인격적인 실존으로서의 개인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라는 특수한 세계의 성원(member)이라는 정체성을 부여받으며 구성된 추상적인 인물이다. 사회학적인 표본 혹은 사례(case)로서의 인물, 푸코가 말한 것처럼 주권적인 개인이라기보다는 출생, 사망, 질병, 교육, 직업 등의 다양한 벡터들의 작용을 통해 상상되는 인간(인구라는 생명정치가 상상하고 가시화하는 인간의 표상)이 바로 “사회”라는 상상적 세계에 속한 인간의 형상이라 할 수 있다.⑦
사회국가(the social state), 우리에게는 복지국가로 알려진 국가는 바로 그런 인간을 상대한다. 사회국가는 인민이라는 주권적인 개인들의 연합으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생명이라는 격자를 통해 인식되고 분절된 인구를 통치 대상으로 삼는다. 다시 말해 사회국가는 현실을 사회라는 이름의 대상으로 구성하고 그것을 권력이 행사되는 표면으로 다듬어낸다. 그리고 그 세계 속에 살아가는 인물들은 인구와 그 인구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식별한다. 이를 위해 사회국가는 방대하고 복잡한 인구(그리고 그 일원으로서의 개인)에 관한 기록을 생산하고 분류하며 분석하고 보관한다. 이런 생명체로서 인구-개인을 관찰, 규율, 평가하도록 돕는 핵심적인 수단이 바로 사진이다. 아우그스트 잔더의 사진은 바로 이러한 인물사진의 전범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벤야민이 말한 것처럼 그는 관상학적인 과학의 도움을 빌어 ‘사회’(질서)를 표상한 전대미문의 사진가였다.⑧ 관상학이나 법의학, 범죄학과 같은 새로운 과학은 인구의 분류와 관리를 위한 과학이자 동시에 사회를 상상하도록 만드는 담론적 장치의 핵심적 성분이었다. 관상학적 상상을 통해 사회의 이미지를 떠올린다는 것은 인물 즉 인구학적인 표본으로서 발견되고 고정된 사진들을 연쇄시키고 또 구축함으로써 사회를 상상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즉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인물 사진의 연쇄이다. 그렇지만 그 사진 이미지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사회라는 상상적인 대상이다.
이러한 사회학적인 사진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갖는다. 그것은 사회국가가 만들어내는 사회학적 상상에 참여할 수 있다. 혹은 조합주의적인(corporatist) 상상을 통해 계급이나 계층과 같은 ‘사회학적인 집단’의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 때 사진은 노동자, 농민, 빈민, 인종집단 등과 같은 ‘사회적’ 계층을 표상하게 된다. 이를테면 제이콥 리스(Jacob Riss), 루이스 하인(Lewis Hine) 등의 사진이나 농업안정국의 의뢰로 제작된 도로시아 랭(Dorothea Lange), 워커 에반스(Walker Evans) 등의 사진은, 이를 떠나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것을 ‘사회적 다큐멘터리’라고 부르면서 사회 개혁 혹은 사회 운동의 형태로 사진이 정치적인 교육과 선전, 동원을 위한 자원으로 고려될 때 역시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라는 현대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이념이 상기시켜 주듯이 ‘사회’라는 관념은 정치가 이뤄지는 대상이자 그러한 정치가 설립하게 될 미래 세계의 모습에 역시 사회라는 상상을 주입하였다. 그것은 예술적 실천에서도 역시 예외가 아니었던 셈이다. 그리고 우리는 물론 그와 먼 거리에 위치한 예술적 실천 역시 규정하였다. 그러므로 현대 사진의 내부에 깃들어 있는 사회학적 상상을 모두 망라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어쩌면 현대 사진 전체가 이런 사회학적 상상에 의해 채색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전통적인 노동자계급 운동이 쇠퇴한 지금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 없는 세계를 촉진하고 오직 개인들이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 돌보아야 하는 것을 통치의 원리로 삼는 (신자유주의) 정치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그러한 사회학적 사진 이미지가 여전히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런 점에서 2000년대 초반에 이뤄진 박진영의 사진은 어떤 동요에 의해 흔들린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대형카메라를 운반하고 자신이 선택한 위치에 그것을 설치하며 노출을 조절하고 파노라마적인 장면을 통해 세계로부터 잘라낸 하나의 풍경을 기록한다. 그리고 그 풍경 속에는 언제나 예외 없이 하나의 인물 혹은 몇 명의 인물이 배치되어 있다. “#1 모 회장의 자살현장/한남대교”라는 유명한 사진에서 우리는 어느 대기업 회장의 자살 사건을 보도하는 기자와 방송진들이 사진 화면의 왼쪽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조금 더 먼 거리에는 경찰복인지 제복을 입은 두 사내가 강기슭에서 강을 향해 등을 돌린 모습을 본다. 그리고 다시 화면의 오른쪽 중간 부분에 역시 몇 명의 인물이 모여 있는 모습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들을 잇는 선처럼 오른쪽으로 기운 채 붉은 기운이 감도는 억새가 화면을 비스듬히 가르며 화면 아래를 채운다. 이런 이미지의 짜임새는 “#9 일요일의 캠퍼스/경희대”, “#13 재단장한 탑골공원/종로” 그리고 “#14 어버이날/중랑천” 같은 사진들에서도 반복된다. 그러나 이런 구성에서 우리는 파노라마 사진에 으레 따라다니는 어떤 시각적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아니 외려 그것이 배반당한다고 차라리 느끼게 된다. 파노라마 사진은 자신이 지시하는 대상을 스펙터클한 매력으로 변형하고 관람자로 하여금 그 대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듯한 인상을 부여하면서 동시에 그 대상의 숭고함에 압도되어 위축된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렇지만 그러한 파노라마 사진 이미지에 대한 흔한 생각은 박진영의 사진에서 식별하기 어렵다. 그가 보여주는 사진 안에서 우리는 많은 정보를 가지게 되지만 그 정보들이 하나의 이미지를 구상하는데 조력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외려 이미지, 즉 그가 말하는 것처럼 사회라는 상상적인 가상(imagery)을 구축하기는커녕 그것에 이르는 어려움을 토로하는 듯이 보인다. 화면 속의 인물들은 화면의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거나 따로 모여 있다. 그리고 그 인물들을 벗어난 표면을 채우는 것은 수평으로 넓게 펼쳐진 바닥-강 혹은 하천의 수면, 공원의 휑한 바닥, 시멘트 바닥과 계단, 언덕 기슭을 가득 채운 폐허더미, 혹은 시멘트 계단으로 이뤄진 관중석에 에워싸인 테니스코트 등-이다. 이렇게 생각할 때 그의 사진들을 사회적 다큐멘터리라고 보기엔 어렵다. 그것은 오히려 사회를 상상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곤경에 처했음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보다 적절한 용어를 택하자면 그의 사진들은 사회의 불가능성에 대한 사진이고 그런 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이라기보다는 강한 시학적인 함축을 지닌다.
초점의 대상이 된 인물들이 어떤 이미지를 제안하는 역할을 발휘하기는커녕 더욱 그 인물들과 그들이 놓인 배경 사이의 극적인 대조로 인해 ‘세계 없는 인물들’임을 더욱 강하게 환기시키는 사진들은, <도시 소년 Boys in the City> 연작에서 더욱 뚜렷하고 도드라진다. “감시카메라”나 “어깨동무”, “등돌린 소년과 퓨마”, “1단지를 접수한 소년들”, “어떤 약속” 같은 사진들은 소년들의 초상 사진을 보여준다고 약속하지만 우리는 그 초상 사진들을 의미있게 식별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나는 그 사진들이 청소년이라는 사회학적 세대를 지시하고 이미지화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사진 속에 등장하는 10대 소년들은 청소년이다. 그들은 소년이지만 그것은 2차 대전 이후 서구 사회에서 시작되어 1990년대 이후 한국에서 이야기하는 이른바 ‘사회 문제’의 하나로서의 ‘청소년 문제’가 자신의 상상 속에 운반하는 그 소년들이 아니다. 그 이미지 속에 등장하는 청소년은 사회화에 실패했음을 가리키기 위해 고안된 저 악명 높은 사회학 용어인 ‘일탈’이라는 내포적 의미를 가리키지도 않는다. 10대라는 생물학적인 연령은 사회학적 렌즈를 통해 청소년이라는 인구학적인 정체성을 지닌 집단으로 분류되고 그들이 겪는 곤란은 사회문제라는 큰 범주의 하위 범주인 ‘청소년문제’로 각색된다.
그런 점에서 <도시 소년> 연작을 보게 될 때 나는 ‘소년’이라기보다는 ‘도시’에 흥미를 갖게 된다. 소년들이 자신을 제시하기 위해 함께 이미지의 표면 위로 동반하는 그 풍경은 터무니없으리만치 무의미하다. 그리고 파노라마 카메라는 그것을 자신이 노출한 시간만큼 자신이 선택한 스케일만큼 사진 이미지로 운반한다. 그것은 이미지 속에 놓인 소년들이 속한 세계를 알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정반대의 결과, 가장 자명한 것처럼 보이는 청소년이란 사회적 도상이 생뚱맞으리만치 사회적인 초상으로서 나타나지 못하는 이미지 내부의 부조(不調)를 말해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가 이르게 된 최근의 사진, 특히 그가 야심천만하게 <사진의 길>이라 명명한 사진 연작들을 헤아려 볼 수 있는 실마리를 찾게 된다. 그 사진들은 방금 언급한 사진들로부터 벗어나는 사진들이 아니라 그 사진들이 처한 미학적인 전략과의 연장 속에서 이해될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의 전작(前作)이 사회적 다큐멘터리라는 범주에 속한 사진들이 아니라 다큐멘테이션(documentation)을 가능케 하는 정치적 매개(즉 20세기를 지배했던 사회라는 매개)가 사라지거나 혹은 무력해지게 된 조건들을 언급한다는 것, 그리고 바로 사회적 다큐멘터리의 방법을 차용하지만 거꾸로 사회를 불가능케 하는 그 부정성(negativity)을 화면에 기재한다는 것(파노라마 사진의 표면을 뻑뻑하게 채우는 마치 죽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평면화된 수평 혹은 수직의 주변 풍경)을 ‘징후적’으로 혹은 과도하게 가정할 수 있다면 말이다.
“사진의 길” 혹은 사진의 기술적 현상학
사회적 다큐멘터리 사진은 그것이 존립할 수 있도록 하는 코드, 즉 사진적 메시지를 읽을 수 있도록 돕는 맥락, 사진 이미지가 기록하고 재현하는 대상을 인식하고 시각적 쾌락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담론이 작용하는 조건에서만 가능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러한 인식가능성의 조건이 없다면 시각적 가시화의 조건 역시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박진영의 2000년대 초반의 파노라마 연작 사진들이 바로 그런 정황을 드러내고 있었다고 짐작하게 된다. 따라서 그는 기록과 증언, 보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수행하는 사진 이미지의 제작이 처한 조건이 어렵다는 점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그의 사진은, 앨런 세큘러의 용어를 짓궂게 뒤튼다면, 사진 이미지가 표류하는 조건을 나타낸다. 세큘러는 사진 이미지의 의미를 가리키기 위해 ‘운항(traffic)’이란 개념을 제안한 바 있다.⑨ 즉 사진의 의미는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에 의해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사진이 생산, 분배, 수용되는 문화적 체계에 의해 항상 규정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운항이라는 개념은 한편으로는 그것이 기착지 혹은 종착지를 갖고 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즉 사진은 항상 어떤 의미에 이르게 된다는 점을 그 용어는 낙관적으로 암시한다. 그러나 박진영의 사진은 그보다는 비관적이다. 그의 사진들은 ‘운항 중의 사진’이 아니라 외려 표류하고 있는 사진을 보고 있다고 쓸쓸히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진은 이제 말할 수 없는가. 사진을 말하게 하고 그것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사진의 말을 듣게 하는 담론적 조건이 희박해짐으로써 사진이 역사적 현실을 비판적으로 재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인가. 아니 우리는 마침내 사진의 민주주의에 이르게 된 것일까. 큐레이터와 평론가들이 말하는 형식적 미학의 시점을 통해 상찬하는 사진에서부터 상품을 심미적 환상의 대상으로 운반하는데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능력을 발휘하는 광고, 잡지 사진 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진들은 각자 자신들을 읽을 수 있는 다원적인 읽기와 수용의 담론을 채용한다. 이는 사진에 하나의 보편적인 의미, 해방, 자유, 평등, 무엇이든 어떤 보편적인 정치적, 윤리적 규범이 불가능하다는 세간의 믿음을 적극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오직 무한히 다양한 사실들의 ‘다양태’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것을 하나의 질서로 조직하는 초월적인 규범을 요구하는 것은 오직 형이상학적인 폭력일 뿐이라고 세상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한 다원적인 민주주의의 세계에서 사진 역시 예외일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사진에게 무한히 다양한 사진적 진실, 사진적인 아름다움이 존재한다고 선언하고 현기증 나는 사진의 민주주의에 기꺼이 참여하면 되는 것일까.
박진영은 그의 두 번째 단계의 사진의 시작을 알리는 <히다마리(ひだまり): 찬란히 떨어지는 빛> 전시를 위한 사진집에서 이렇게 말을 건넨다. 그것은 너무나 솔직하고 또 명료하게 자신의 의지와 생각을 비치고 있어, 읽는 이를 놀라게 한다.
“나는 그동안 사진이란 매체로 사회적 관점 혹은 동시대적 관점에 천착해 작업을 진행해 왔다. …… 하지만 언젠가부터 내가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기보다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에 가깝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또한 뭔가 의미심장한 주제와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사진가란 항상 사회를 향해 발언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또한 지나친 문제의식에 사로잡혀 대상의 본질을 보기보다는 대상의 효과적인 시각화에만 전념 했던 게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이미 사진이 현대 사회에서 가장 대중적인 매체로 자리 잡은 오늘날, 나는 사진가로서 어깨에 힘을 빼기로 한다. 이는 불특정 대중과의 의사소통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멈춤이자 편협한 사고를 걷어내기 위한 치유이기도 하다. 그저 시간과 공간을 담는 사진 본연의 속성을 믿으며 기술적 발전이 급격한 이즈음 사진이 태동하던 시기의 자세와 정신으로 돌아가 사진적인 사진을 찍는 시도를 시작한다.⑩”
그는 사회적-동시대적 관점을 버리겠다고 말한다. 그것은 강박관념에 가까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스스로 ‘대상의 본질’을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또 ‘시간과 공간을 담는 사진 본연의 속성’을 믿기로 다짐한다. 그리하여 놀라운 결의에 이른다. ‘사진적인 사진’을 찍겠다는 것이다. 그는 ‘어깨에 힘을 빼기로’ 했다고 말하지만, 실은 우리는 그의 어깨에 실린 단호한 힘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그 모든 것, 그가 내세우는 대당(對當), 사회적-동시대적 관점의 사진 대(對) 시간과 공간을 담는 사진 본연의 속성, 즉 사진으로서의 사진이라는 것에서, 코드, 맥락, 제도, 담론, 아카이브 등 사진적 실천을 구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모든 관념들이 소거되는 것을 바라본다. 그리고 이 모든 몸짓은 사진 자체, ‘바로 그 사진(photography as such)’을 향한 관심으로 모아진다. 그렇다면 그는 사진이란 ‘재현인가 아니면 현상학적인 실재(real)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후자를 향해 스스로의 사진을 몰고 가기로 결심한 것일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그의 근작들인 <사진의 길>에서의 사진, 그리고 그가 채택한 전시와 관람의 전략을 검토하게 된다.
사진 그 자체로 회귀하기를 원하는 사진가들이 흔히 택하는 전략처럼 박진영 역시 <사진의 길>에서 ‘기억’이라는 주제를 택한다. 그리고 그 기억은 우리 모두를 경악시킨 후쿠시마라는 재난의 기억이다. 물론 기억이라는 경험적인 지각 대상은 없다. 기억을 담고 있는 대상 그 자체란 없다. 그런 이유로 기억은 여러 가지 차원을 연루시키며 사진의 독특한 능력을 발언할 수 있도록 하는 구실을 할 수 있다. 또 그것이 많은 사진작가들이 새로운 사진적 실천을 위해 선택하는 전략으로서 기억을 선택하게 한 것인지 모른다. 기억에 관한 사진은 사진의 주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진 자체의 존재론을 정의하려는 근년의 사진적 전망을 가리키는 이름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기억의 이미지는 그 사진이 재현하는 대상의 편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초과하는 사진 자체의 능력의 편에서 말을 건넨다. 기억을 재현하는 이미지로서 선별될 수 있는 대상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기억을 재현하는 대상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역사화(歷史畵)를 통해 재현하거나 공식적인 역사 서술의 아카이브와 서적, 전시에서 나타나는 이미지 역시 기억에 호소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이미지 자체가 말을 건네는 것이라기보다는 이미 조직된 관람객, 즉 그것을 무엇으로 어떤 관념과 지향 속에서 기억해야할지 미리 알고 있는 관람객을 초대한다. 설령 그 이미지에 저항하거나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전유하는 일이 일어난다할지라도 이미지 자체의 진실은 이미 그것이 제시되는 순간 이미 규정되어 있다. 이때의 기억은 거의 자동적이고 또 정치적, 미학적인 규범에 복종하는 행위이다.
그렇지만 기억의 이미지는 공식적적인 혹은 미리 규정된 역사적 이미지와 다른 것이다. 역사적 이미지란 기억할 가치가 있고 재현될 자격을 갖는 대상을 전제한다. 그러나 기억의 이미지는 다르다. 그것은 먼저 미리 프로그램된 기억-대상을 갖지 않는다. 기억을 재현하기 위해 적합하다고 할 수 있는 대상은 없다. 차라리 우리는 어떤 대상이든 기억을 재현하기 위해 선택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기억의 이미지는 오직 다양태(multiplicity)의 이미지이다. 그것이 다양태인 이유는 역사적 기억처럼 이념화된 대상(정치적 의례, 전쟁, 시위, 소요, 산업 장관, 빈곤의 풍경 따위)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억의 이미지는 모든 대상에게 기억의 잠재성을 가질 수 있는 자격을 열어놓는다. 한편 기억의 이미지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국민이라든가 특정한 정치적, 사회적 주체와 동일시할 것을 요구하는 그러한 역사적 이미지와 다르다. 기억의 이미지는 관람객을 어떤 주체-위치로 호명하지 않은 채 관람객의 눈길에 호소한다. 그러므로 기억의 이미지는 집단적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이고, 정신분석학의 용어를 빌자면 상징적이라기보다는 상상적이고, 사회적이라기보다는 비사회적이다.
<사진의 길>에는 <카네코 마리의 앨범 金子滿里の アルバム>이라는 사진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2012년 서울 에르메스 미술관에서 전시를 할 때 바닥경사를 4도로 만들고 관람객이 기울어진 지면을 디디며 감상하도록 한 설치 작업의 일부분이었다. 전시장 바닥을 그토록 배치한 것은 사진을 관람하는 행위를 감각적 나타남으로서 체험하길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의 길>에 수록된 이 작업에 대한 소개는 이렇게 말한다. “센다이현 초등학교에서 우연히 발견한 아마추어 사진가, 카네코씨. 이 일본인 사진가가 남겨둔 앨범을 매개로 해서 일본에서 살아가고 있는 한국인 사진가가 낯선 언어로 상상의 대화를 나눈다. 작가는 이 앨범을 뒤적이면서 한국의 아마추어 사진가, 전몽각의 <윤미네 집>을 떠올리며, 칼라사진의 첫 등장시기를 한국과 비교해보기도 한다.” 박진영은 3월11일 쓰나미가 일본의 동북부 지역을 휩쓸고 지난 이후 현장을 찾았다. 그리고 미야기현의 센다이 근처에서 “2011년 7월 중순경” 우연히 앨범을 주웠다. 사실 그는 자신이 우여곡절 끝에 방문한 재난 현장에서 놀랍게도 많은 사진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쓰나미가 생존의 물질적 환경, 즉 집, 도로, 자동차, 통신, 수도 등을 모두 흔적 없이 파괴하고 난 이후 그 자리에서 주인을 알 수 없는 사진들이 흩어져 있었다는 것은 새삼스럽고 또 기묘한 기분이 들게 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와 나눈 사적인 대화에서 박진영은 사진의 ‘물질성’이란 개념을 들어 이를 설명하려 했다. 이제 픽셀화된 비물질적 정보로 존재하는 사진 이후의 사진과 달리 그는 아날로그(analogue) 사진, 혹은 말장난을 하자면 유비적인(analogous) 사진이 지닌 역량, 그리하여 지금 잊고 있거나 애도할 처지에 이른 어떤 사진 본연의 힘을 안간힘을 다해 역설하는 것, 그것이 아마 물질성이란 낱말을 통해 가리키려 했던 생각이 아닐까 짐작한다. 나는 그것이 대형 카메라를 사용하여 작업을 하는 사진가가 자신의 기술적 선택을 으스대기 위하여 한 발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모든 것이 파괴되고 소멸한 것처럼 보이는 재난의 현장에서 완고하게 자신을 알리는 사진의 현존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진영은 자신이 재난 현장에서 습득한 사진 앨범의 주인 카네코 마리를 애타게 찾는 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우리 역시 그가 보여주는 사진들을 통해 카네코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것은 전후 일본 현대 생활사의 풍경에 속한 여느 사회학적인 캐릭터로서의 카네코는 아닌 듯 보인다. 멀리서 전람차가 보이는 공원에서 어깨 깃이 넓고 손부리가 다 드러나는 짧은 외투를 입은 소녀 카네코의 모습, 소풍을 가거나 아버지와 나들이를 나선 귀여운 카네코의 모습, 겨자 색 스웨터를 입고 혹은 물방울무늬가 가득 프린트된 민소매 셔츠를 입고 마침내 칼라사진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카네코의 모습. 그 사진 이미지 안에 기재된 시각적인 정보는 우리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풍속화적 이미지도 아니고 역사적 이미지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냥 사진적인 이미지일 뿐이다. 그것은 재현하는 대상과는 무관한 채, 재난 이후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사진적 현전을 통해 여기에 존재하는 그녀, 카네코이다.
이 때 나는 앞서 인용한 박진영의 다짐, 사진 본연의 속성에 천착하는 사진, 사진적인 사진을 찾겠다는 의지를 스스로 실천하고 있음을 확인한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는 그것을 ‘기억’이라는 이미지와 행위, 사진적 전략에서 찾고자 하는 듯이 보인다. 기억이란 바로 무엇을 찍을 것인가라는 선택과 상관없기 때문이다. 기억은 재현되어야할 대상, 그 대상을 어떤 방식으로 재현할 것인가에 대한 숱한 기술적, 미학적 고려 등으로부터 사진가를 해방시켜준다(아니 그렇다고 가정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기억의 이미지라고 말할 때 그것은 사진의 제재나 주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사진, 혹은 사진의 다른 존재방식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박진영의 어법을 빌자면 그는 기억의 이미지를 통해 사진의 ‘길’을 찾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그 길이란 무엇일까. 그는 사진이 막다른 길에 이르렀고 사진이 지닌 힘을 회복하고 갱신할 새로운 길을 찾겠다는 것일까. 아니면 사진이 가야할 온전한 길, 사진의 원칙, 사진 그 자체의 길로 귀환하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까.
박진영은 “나토리시(名取市) 연작”에서 재난 현장에서 사진액자, 카메라, 란도셀, 야구 글러브, 비너스, 음료수병, 정 등을 수집하고 이를 찍은 사진을 제시한다. 이 때 그가 보여주는 사진들이 각기 그 사물들을 보여주는 사진들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차라리 사진액자=사진, 야구 글러브=사진, 음료수병=사진, 비너스=사진 등으로 이어지는 등가적 관계의 제시일 것이다. 사진은 사진 속에 재현되는 대상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을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드러낸다는 말이 그 사진을 통해 비롯되는 미학적 효과를 제대로 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차라리 사진 그 자체(in itself)의 현현 혹은 계시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비너스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보는 것이다. 이는 사진 자체의 놀라운 능력에 눈뜨도록 우리를 촉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진적 이미지가 어떻게 이데올로기적인 효과를 생산하며 사진 이미지가 자신의 표면에 가시화하는 것은 어떤 비가시성과 항상 변증법적 관계에 있는지를 캐묻는 이미지의 비판적 정치와는 상관없다. 그가 보여주는 사진이란 숨길 것이 없다고 말하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사진의 길>을 압축하는 사진은 현명하게도 그가 사진집의 맨 앞자리에 놓은 <초여름에 내린 눈>이라는 작업일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 사진적 이미지의 미학적, 정치적 효과를 조직하는 권력, 담론, 코드 등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초여름에 내린 눈을 찍은 이 사진은 사진이란 아무 것도 숨기는 것이 없다고 말한다. 이 사진은 우리에게 그것이 걸려들어 있는 코드를 벗겨내어 해독하는(decoding) 식의 읽기의 실천 따위는 무시해도 좋다고 말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사진은 순수한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세계가 숨김없이 자신을 현상하도록 하는 일을 행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듯이 군다.
감각하게 하는 이미지
그렇다면 박진영이 택한 사진의 길은 너무 나아간 것인가. 그는 사진에서 사진 그 자체를 보도록 요구한다. 그는 사진적 사진을 발견하고자 한다. 우리는 그런 몸짓을 강제하는 조건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사진-이미지에 거의 익사할 지경이다. 이미지는 너무 많고 그것은 거의 아무런 효력도 없이 우리를 스쳐지나간다. 사진은 어디에서나 휴대할 수 있고 어디에서나 전시되며 어느 자리에서나 볼 수 있다. 사진은 무의미한 과잉 그 자체를 가리키는 이름처럼 여겨질 정도이다. 이미지의 불임성을 보여주는 증좌가 바로 사진이라고 말한 다해도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진에게서 관람객을 붙잡아매고 사진에게서 어떤 효력을 생산하게 하는 것은, 바로 사진의 그러한 자기 현존, 재현하는 이미지가 아니라 사진 자체의 현존을 사진은 생산해야 한다는 소망은 충분히 납득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더 흥미로운 것은 바로 20년의 시간의 궤적을 거치며 그가 주파한 사진의 여정이다. 그것은 그의 개인적인 행로를 말하여주기도 하지만 또한 동시대 사진이 직면한 근본적인 쟁점을 성실하고 또 묵묵히 해결하고자 시도했다는 점이다. 그가 선택한 해법이 과연 옳은 것인지 나는 단언할 수 없다. 그것은 건방지고 무례한 짓일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의 사진적 실천이 거쳐 온 궤적들을 추적하면서 그를 동시대 한국 사진의 하나의 증상으로서 헤아려보는 일이다.
박진영은 앞서 선택한 도식에 따르자면 스투디움인가 푼크툼인가의 노선에서 후자를 향해 나아간다. 그는 사회학적 사진을 찍으면서 동시에 그와 같은 사진을 가능케 한 정치적 조건이 소멸했음을 예민하게 감지하는 (사회 없는 세계의) 사회학적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는 사진의 표면, 사진의 이미지와 그것의 재현으로서의 성질에 대해 깊이 실망한 듯이 보인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자신의 ‘사진의 길’을 찾아간다. 그것은 장면의 사진, 사진의 감각적인 힘이 현현하는 사진이다. 그는 사진적 사진, 바로 그 사진을 발견하고자 하였고, 재난의 잔존물을 찍은 사진에서 재현을 초과하는 사진의 잠재성을 증언하려 한다. 그것은 역사-이미지에서 기억-이미지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사진-이미지의 외부에서 사진을 제한하는 이데올로기, 의미의 체계가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사진의 순전한 내재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나는 제발트의 소설 속에서 마주하는 사진을 떠올린다. 그것은 기억의 이미지라고 부를 만한 것의 원형처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가 발견하고 또 스스로 찍은 조악한 사진들, 비망록에 가까운 사진들은 체계화할 수 없는, 완결된 역사적 서사의 삽화로 도저히 환원할 수 없는 이미지의 행렬을 보여준다. 그의 사진들이 20세기 인간의 인류학이라고 할 만한 것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아무도 말하지 않은 알려고 한 적도 없는 인물, 사건, 대상들의 이미지들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사회학적 상상이 일컫는 것처럼 자신을 대표하거나 재현할 기회를 갖지 못했던 소수(자)의 이미지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벤야민이 말한 변증법적 이미지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그가 그의 소설 속에 심어놓은 이미지들은 인물이고 세계이다. 그렇지만 그 사진-이미지는 또한 한없는 정서적인 힘을 환기한다. 그것은 소설 속의 화자의 시선을 장악하고 그 이미지가 불러일으킨 충격에 반응하도록 이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진을 본다기보다는 사진의 위력, 이미지의 역량을 보라는 부름을 듣는다. 그것은 사진이 재현하는 대상보다 더 큰 사진의 힘을 말해준다. 기억은 재현된 대상에 구속되고 결정되지 않는다. 기억은 자신이 마주친 이미지의 현상학적인 힘에 의해 추동된다. 그러므로 기억의 이미지는 재현을 초과하는 사진, 감각적인 충격으로서의 사진을 가리키는 것인가.
벤야민의 변증법적 이미지란 개념에 의지하면서, 디디-위베르만은 “인민이란 재현할 수 있는가”란 물음에 답하는 에세이를 쓴 적이 있다.⑪ 그는 “단일성, 정체성, 총체성 또는 일반성으로서의 인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⑫ 그런 점에서 그는 인민이라는 정치적 주체를 실체화하고 그것을 유일하고 적법한 보편적 이미지에 가둘 수 있다는 믿음을 거부한다. 그렇다면 인민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다양태로서, 각자 자신의 이해와 욕구를 제시하는 의견을 가질 뿐인, 인간들의 군도(群島)가 있을 뿐인가. 디디-위베르만은 인민의 부재, 인민을 가시화할 수 없음이라는 이런 비관적인 허무주의 역시 거부한다. 그렇다면 인민이란 누구이고 어떻게 재현될 수 있는가. 그는 지배적인 이미지 체제가 만들어내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도록 만드는 이미지를 찾아낸다. 그가 말하는 인민이란 이미지의 전체성을 흔드는 부정을 가리킨다. 그 때 그 이미지는 잔존물을 기록하고 재현하는 것일 수도 있고, 이름 없는 자들을 사진 이미지로 운반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에게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에게 결정적인 것은 바로 감각하게 만들기,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정동의 효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디디-위베르만은 교차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교차시킨다. 먼저 그는 초월적 보편성을 대표하는 인민은 없다고 말하지만 인민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감각적 사건을 통해 항시 만들어지고 만들어져야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음으로 그는 그것은 누구를 재현하고 어떻게 재현하여야 하는 가의 문제를 감각의 변증법 속에서 공식화한다. 그리고 그는 ‘냉혹한’, ‘무감각한’ 이미지들에 맞서 ‘감각할 수 있게 만드는’, ‘증후의 변증법’을 가동시키는 이미지를 내세운다. 이 때 그는 사진을 이미지라기보다는 감각적인 체험, 현상학적인 나타남과 결부시킨다.⑬
여기에서 우리는 최근 등장하는 흥미로운 사진의 미학적, 정치적 프로그램의 어떤 윤곽을 식별할 수 있다. 그것을 나는 다시 앞에서 편의를 위해 선택한 바르트의 이분법을 빌어 정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것은 스투디움인가 푼크툼인가라는(either/or) 사진의 대립적인 노선을 종합하는 즉 스투디움이면서 동시에 푼크툼인(and) 사진-이미지의 노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⑭ 사진-이미지는 단지 재현인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감각적인 실재이다. 사진-이미지는 언어적 기호인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감각적인 육체이다. 사진-이미지는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가 성립할 수 없음, 그것의 불가능성의 부정적 증후를 드러낼 수 있다. 나는 박진영의 사진이 그러한 사진의 노선, 사진의 길을 열어 보일 것인지 모르겠다. 당장 그가 자신의 카메라의 노출을 활짝 열고 찍은 선명하고 환하게 발색된 근작 사진들 속에서 그가 가까스로 숨기고 있는 멜랑콜리를 느끼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가 앓고 있는 멜랑콜리는 그의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시대의 우울이기 때문이다.
* 각주
① 발터 벤야민,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폭력비판을 위하여/초현실주의 외> 최성만 옮김, 길, p. 347.
② Alan Sekula, Photography against the Grain: Essays and Photo Works 1973-1983, Halifax, N.S.: Nova Scotia College of Art and Design Press, 1984, p. xv.
③ 롤랑 바르트, <밝은 방 : 사진에 관한 노트>, 김웅권 옮김, 동문선, 2006.
④ 나는 여기에서 푼크툼을 직접 참조하지 않지만 사진의 존재론을 기획하는 데 적극 참여하는 비평가들의 이름을 떠올린다. 국내에 소개된 주장들을 꼽아본다면 그들은 필립 뒤바, 빌렘 플루서, 조르주 디디-위베르만, 마이클 프리드 같은 이들이 될 것이다. 필립 뒤봐, <사진적 행위>, 이경률 옮김, 마실가, 2004. 빌렘 플루서, <사진의 철학을 위하여>, 윤종석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1999. 조르주 디디-위베르만, <반반딧불의 잔존: 이미지의 정치학>, 김홍기 옮김, 길, 2012. 마이클 프리드, <예술이 사랑한 사진>, 구보경, 조성지 옮김, 월간사진, 2012.
⑤ 마이클 프리드, 앞의 글.
⑥ 물론 여기에서 나는 인류학적 실천을 자신의 예술적 실천의 전망으로 택한 미술가들을 비평하며 할 포스터가 말한 ‘민족지학자로서의 미술가’란 개념을 떠올린다. 훗날 공동체, 공공, 대화, 참여 미술 등의 이름으로 알려지고 관계미학이란 미학적인 이념에 의해 자신의 예술적 실천을 옹호받게 될 예술가들의 실천에서, 그는 인류학자로서의 예술가로서의 모습을 찾는다. 그렇지만 그가 소홀히 한 것은 민족지적(ethnographic) 실천과 거의 평행하게 진행된 사회학적인 실천의 추세라 할 수 있다. 할 포스터, 민족지학자로서의 미술가, <실재의 귀환>, 경성대출판부, 2003.
⑦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글을 참조하라. 미셀 푸코, <안전, 영토, 인구>, 오트르망 옮김, 난장, 2011.
⑧ 발터 벤야민, “사진의 작은 역사”,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사진의 작은 역사 외>, 최성만 옮김, 길, 2007.
⑨ Alan Sekula, Photography against the Grain: Essays and Photo Works 1973-1983, Halifax, N.S.: Nova Scotia College of Art and Design Press, 1984.
⑩ <ひだまり: 찬란히 떨어지는 빛>, 메이드, 2008, p. 52.
⑪ 변증법적 이미지라는 벤야민의 개념을 통해 이미지의 존재론을 새롭게 제안하는 그의 시도는 <반딧불의 잔존>에서 전개된다.
⑫ 조르주 디디-위베르만, 감각할 수 있게 만들기, <인민이란 무엇인가>, 알랭 바디우 외, 서용순 외 옮김, 현실문화, 2014, p. 98.
⑬ 앞의 글, pp. 140-3.
⑭ 이런 점에서 바르트의 스투디움/푼크툼의 이분법을 가짜 대립으로 거부하면서 그의 특유의 미학적 체제란 관점에서 사진-이미지에 관한 미학적 반성을 시도하는 랑시에르의 저술들 역시 떠올려볼 수 있다. J. 랑시에르, <이미지의 운명>, 김상운 옮김, 현실문화, 2014. Notes on the photographic image, Radical Philosophy 156, 2009. 특히 그는 <해방된 관람자>란 저작에서 “골몰케 하는/골몰하는 이미지(pensive image)”란 개념을 제시하며 바르트의 주장을 비판한다. 그는 재현과 정동, 사진의 언어적 특성과 감각적 효력을 분리할 수 없고 이것이 바로 현대의 미학적 체제의 핵심적인 특성이라고 역설한다. 즉 스트디움과 푼크툼은 현대의 감각성의 체제인 미학적 체제에서는 기원적으로 서로 얽혀있다는 것이다. J. Rancière, “The pensive image”, The emancipated spectator, G. Elliot. trans. London: Verso, 2009, pp. 107-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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