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 사진 속 유재(遺在) 그리고 미래의 잔사(殘史)

홍경한 (미술평론가)




1. 즉물적 관점과 사건의 관점이 교차되고, 실재와 언어가 공존한다. 한편으론 사진의 전통적 역할에 충실한 재현성을 띠지만, 분열된 사회의 비판적 타자로써 중립적-중성적인 태도로 접근한다는 점, 인간 존재에 대한 시선이라는 일관된 주제를 보면 유형학적 모습도 드러난다. 물론 허구적 조화를 배척하기에(작가는 디지털에 대해서도 그닥 호의적이지 않아 보인다) 간혹 그의 작업은 건조하고 차가운 외상(外像)을 보여준다.① 하지만 그 속에 담긴 흔적들에는 삶의 희망을 저버리지 않는 온기가 있다. 그리고 이 둘은 어느 정도 간극을 유지한 채 박진영 작업의 근간을 이룬다. 때문에 작가 박진영의 작업에 대해 ‘명사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인가?’라는 자문은 스스로를 멈칫하게 만든다.
   박진영의 사진은 오랜 시간 유지해온 다큐멘터리 저널리즘에 기초하고 있기에 일회적으로 묘사된 사진으로 수용하긴 어렵다. 단순한 현장의 사실적인 기록을 뛰어넘어, 생생한 현장감, 정적 꿈틀거림이 냉정한 피사체의 드러나지 않는 삶의 숨결에 덧대어 전개되므로 단지 보이는 것에 방점을 두기에도 곤란하다. 특히 지난 2011년 대지진 쓰나미로 폐허가 되다시피 한 일본 어느 마을(미야기현 外)에서 우연히 줍게 된 앨범 속 주인공 ‘카네코 마리’에게 보내는 이미지서간은 근래 그의 사진적 정서와 철학이 궁극적으로 어디로 향하고 있는 지 확인 가능한 작은 단초로 작동한다.
   흥미롭게도 그의 사진철학을 구체화하는 여러 알고리즘(algorithm)은 언제나 호환적이며 상호적, 유기적이다. 이들은 낮고도 진득하게 호흡하면서 객관적 기록을 넘어 주관적 다큐멘터리로 사진의 미학적 영역을 확장하는 데 주요한 분동(分銅)으로 자리한다. 당연히 그 분동의 무게는 시대 상황에 부응한 주관적 문화인류학적 접근을 허용한다는 점에서 예술로서의 사진이라는 평가를 획득하는 주요한 가치구분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 보다 의미적인 건 한계와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진실한 자기성찰이요, 일련의 실험으로서 사진의 근원적 문제로 다가가고 있다는 데 있다. 그건 바로 ‘사진이란 무엇인가?’라는 미학적 본질로 다시 회귀하는 것, 길고 긴 시간의 터널을 재 해체해 처음으로 귀환하는 것을 건너 예술과 예술가의 역할에 대해 되묻는 것에 대한 자발적, 비인위적 모놀로그(Monologue)라고 할 수 있다.② 그리고 이러한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그의 사진사(寫眞史)는 주체로써의 유재(遺在)와 현실로써의 잔재(殘滓)를 동시에 가리키고, 이를 바탕으로 할 때 미래의 잔사(殘史)는 예견된다.

2. 실제로 그의 작품들은 다분히 정적인 것이면서 수동적이지 않은 것이었다. 관찰자의 태도였지만 매우 참여적인 것이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그건 한국사회의 부조리함을 적극적으로 들춰내는 것이었고 우리 삶을 지배하는 시스템에 대한 ‘격정적 침묵’의 언어였다. 이것이 표면화 될 수 있었던 건 주체의 시선과 탈범주의 서간(徐看), 감정이입이라는 일련의 과정이 균형적으로 유효했기에 가능했다. 일례로 지난 2013년 부산에 위치한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열린 작가의 사진전은 20여 년 간 지속해온 박진영의 사진사를 돌아볼 수 있는 하나의 계기로 아쉬움이 없었다. 이제는 어느새 기성으로 자리 잡았지만 역사와 동고동락하며 투쟁 속 부침의 찰나를 몸소 경험해야 했던 386세대를 담은 <386세대>,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일상을 묘사한 <서울에서 버티기>,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계급사회에서 출구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옮긴 컬러사진 <아르바이트>③ 등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도시소년>, <더 게임>, <히다마리>, <사진의 길>과 같은 연작들이 그의 작품세계를 대리하고 있다.
   이들 작품의 경우 내용은 약간씩 다르지만 사회 속 영원한 탈주로써의 예술관(실제론 그것이 영원히 불가능할 지라도), 모든 것을 동일화하고 표준화하며 획일화 하는, 그러면서 착취구조를 당연히 계승시키는 구조에 대한 작가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이입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외적으론 정경이나 그 고요를 생성하는 숨겨진 질료(hyle)는 역동적이며, 질료를 취한 형상은 현실적인 것이 된다는 그의 사진철학이 공통적으로 깃들어 있다.(어쩌면 이것이 작가론을 형성하는 거푸집이 될 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작가’의 현존만으로도 잊고 있거나 혹은 잊어버린 세상의 단면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들로부터 제공되고 환기되는 유익한 지점들이 획득되기도 한다. 그러 관점에서 박진영의 작업이 전환점을 맞이한 건 (앞서도 잠시 언급했듯)2011년 3월 일본 동부에서 발생한 대지진이다. 그것은 엄밀히 말해 재난이었고 인간이 믿어 의심치 않던 과학적, 합리적, 이성적 양태가 쌓은 재앙이자 역사 후의 비극적 잔재였다. 어찌 보면 윌리엄 터너의 <난파선>(1805)에서처럼 재난 앞에서의 인간 한계를 지정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동부 대지진은 작가의 몸과 정신을 움직이는 계기를 마련한다. 제반 가치의 붕괴, 그로 인한 충격과 혼란, 미약한 인간 존재성에 대한 고찰은 그를 동적이게 하는 동기가 되었다. 하지만 그 내부엔 사회적 양심을 위해 조금이라도 우려를 표하지 않고서는 순수예술가로서 존립할 수 없다는 자기당위성의 실현과 사진작가로써의 목표가 명징하게 각인되어 있었음을 부정하긴 어렵다.

3. 박진영은 사건의 중앙으로 떠나 현장을 누빈다. 신체 위해요소들을 느끼면서도, 보안담당자들에게 쫓고 쫓기는 과정을 거듭하며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되묻는 작업을 이어간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일종의 결로(結露)가 바로 <사진의 길>(2011-)과 <방랑기>(1989-2013)를 관통하는 작품들이다. 하나의 사례로 몇몇의 작품들을 보자.
   누군가의 기억이자 딸이었을 ‘카네코 마리’에게 보내는 ‘이미지서간’을 작성하게 된 2011년 이후 그의 사진은 불안과 공포를 안은 채 일렁이는 바다, 수없이 많은 CCTV만 놓여 있을 뿐 생명체 하나 존재하지 않는 오후 두 시의 텅 빈 거리, 을씨년스러운 공간에 주인 잃은 채 삐걱거리는 목마와 선명의 앨범, 누군가의 손에 쥐어졌을 글러브, 나무에 걸쳐진 마이클 잭슨의 이미지, 인적 없는 곳에 덩그러니 놓인 사사로운 물건들을 옮긴 것들이 교차한다. 후쿠시마와 미야기현에서 습득한 사물들과 도쿄의 벼룩시장, 고물상 등에서 구한 사물들이 화면에 새겨지고, 개입과 찰나의 저장을 통해 작가는 결코 과거에 국한되지 않을 재난의 다양한 측면들을 보여준다. 그야말로 (자칫 평화로워 보이기까지 하나)지독한 욱신거림이라는 깃들어 있는 것들이다.
   사실 대지진과 쓰나미, 붕괴된 원자력발전소, 증발된 모든 것들은 가혹한 결과를 가져왔으나 인지 가능했을지 모를 시련을 의미한다. 보다 깊게는 버텨내고 유재하는 것, 남은 것과 선택된 것, 소실된 것과 흔적이 된 것들에 대한 존재론적 성찰을 나타낸다. 물론 그것은 곧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되는 <우리가 알던 도시-강홍구, 박진영 사진전>④에서 재확인되듯, 투사된 기억에 관한 은유이며, 상을 만드는 질료의 원천에 대한 미학적 탐구, 사진의 본성⑤에 대한 연구이기도 하다.
   이쯤에서 본론을 마무리 하자면, 작가 박진영의 예술이 예술일 수 있는 건 늘 새로움을 목말라하고 시대와 조우하기 때문이다. 남루한 노동현실, 비루한 정치사, 진화로 포장된 문명에 대한 자연의 반격, 여윈 삶에 초점을 맞춘 채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엔 그저 ‘보이는 것’이 아닌, ‘시대의 기표’가 아닌 다큐멘터리사진이 지녀야할 예술적 요소들이 안착되어 있는데, 작가의 주관적 해석, 진실의 발견, 감정의 공유라는 실존주의적 체계가 낮은 듯 짙게 드러남으로써 가능해진다. 특히 비연출성, 사전 구상(pre-visualized), 조형적 공간구성이라는 형식은 그의 실존주의 정신을 보다 강조하는 거푸집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사진이란 무엇인가, 기록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근원적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한 작가의 고민, 물리적 경계 넘나들기, 포박되지 않은 표현의 개방이라는 몇 가지 특징을 함유하고 있다.⑥ 이 모든 것이 그의 작업을 변별력 있게 하는 핵심적인 성분들이다.
   생각해보면 박진영의 다큐멘터리는 개인사와 사회사가 맞물려 있다. 나와 관계없는 듯싶지만 결국 나와 관계 깊은 현장에서 현실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그것은 때로 관조적이고 망루에 선 듯한 여운도 있지만 자신이 하나의 역사적 시간과 물리적 공간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인색한 것은 아니다. 나아가 그의 사진예술은 매번 변화하는 어떤 촉매에 능동적으로 다가서 발화와 산출을 거듭하며 파국을 향해 줄달음치는 역사에 등을 돌리지 않고 있다. 그렇게 그의 사진은 자신의 언어들을 순서 짓는 양태 아래 미래에 새길 잔사(殘史)를 남겨 놓고 있다. 오늘도.

* 각주

① 2011년 3월 발생한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마을은 죽은 도시가 됐다. 그리고 작가는 이 마을의 을씨년스러움을 담았다. 생명이 증발한 현장에서 그는 유일한 생명이었다.

② 작가 박진영의 연작 <사진의 길-미야기현에서 앨범을 줍다> 작가노트에는 “나는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재난의 현장 속에서 처참한 환경의 감상이나 그에 따른 인간적인 번뇌를 느끼기보다는 우리의 삶속에서 사진이라는 의미를 되짚고 고민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③ <아르바이트>(2001-2005)에서 작가는 흥미롭게도 아르바이트 시간노동자들의 이름과 일일 임금을 제목 속에서 밝히고 있다. 내용이 형식을 견지하듯 파노라마 형식을 도입하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이는 끊임없이 추구해온 실험적인 의도, 다큐멘터리 사진의 외형을 넓히려는 박진영의 행보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④ 2015.5.19.-2015.10.11.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⑤ 작가는 <사진의 길> 작가노트에 “쓰나미에 다 떠내려간 집터에 우두커니 앉아서 담배 한 모금을 길게 내품는 아저씨. 이제는 눈물도 말라버려 초점 흐린 눈동자로 행방불명된 아내의 사진 한 장만 있으면 좋겠다는 말이 내 귀를 찌르고 볼 살을 진동시킨다. 영정으로 쓸 사진조차 없어서 얼굴 없이 묻혀버린 수많은 시신들. 우리의 삶에서 과연 사진이 무엇이란 말인가.”라고 기술하고 있다.

⑥ 사진이란 무엇인가라는 보편적 질문에 대해 작가의 판단은 명료하다. 그는 “사진이란 자기의 것이던 타인의 것이던 보는 사람들에게 추억을 선사하며 나아가 현재 자신의 존재를 가늠하는 나침반으로서 작동한다. 또한 자신과는 전혀 관계없는 대상을 찍은 사진이라도 이내 자신의 삶과 연관시켜 그 의미를 확장해 나간다.”고 말한다.(한편, 본론과는 관계없지만 필자는 그의 군더더기 없는 몇몇 글이 읽을수록 마음에 착착 감긴다.)